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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정복군주 근초고왕 백제 역사상 가장넓은 땅 정복

은용네 TV 2015. 9. 6. 18:00

백제의 정복군주 근초고왕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과 비견될 만한 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백제의 근초고왕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서기 346년에 즉위한 근초고왕은 백제의 최 전성기를 이룩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중국 역사서나 삼국시대 짤막하게 적힌 기록에 의존하여

근초고왕의 삶을 유추할 뿐이다.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하여 사전 준비에 철저를 기한 근초고왕은

371년 겨울, 고구려로 출병한다.

 

태자인 아들 근구수와 함께 정복을 떠나고, 고구려의 중앙인 평양성에서

고국원왕과 대치하게 된다.

 

 

정예군사 3만 명을 구성된 백제군의 맹공이 시작되고! 급기야 쏟아지는 백제군의 화살에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목숨을 잃고 만다.

 

한 나라의 왕이 전사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평양성 전투.

 

근초고왕이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는데에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바로 중국과의 교역루트로 여겨지던 낙랑군 확보에 국운을 걸은 것이다.

 

근초고왕의 활발한 정복 사업으로 인해 백제는 오늘날의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및 황해도 일부분을 차지하여 고대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왕을 잃은 고구려의 반격은 계속되고, 이에 맞서 백제는 새로운 전략을

 구상한다.  주변국을 포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라, 가야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왜나라까지 손을 뻗쳐 환심을 산다.

 

주변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함으로써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차단함은 물론

중국의 동진과도 외교관계를  맺어서 외교활동에서도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백제의 심장부는 서울이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 발견된 근초고왕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오늘 방송되는 역사저녈 그날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백제 한성시대.

그 정점에 섰던 근초고왕을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