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운명을 건 한판승부가 있었다.
그 유명한 "관산성 전투"
관산성은 현재 충북 옥천군 군서면에 있는 성으로 당시
신라에 속한 땅이었다.
당시 고구려에서는 장수왕이 즉위하면서 광개토대왕이 추진했던
북진정책 보다는 남진정책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던 때이다.
약소국이었던 신라와 백제는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서로 동맹을 맺게된다.
바로 "나제동맹"이다.
신라 진흥왕 시절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던 나제동맹(백제와 신라의 동맹)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대승하게 되고 한강 일대를 다시 빼앗아온다.
무려 120년 동안 혈맹관계로 돈득한 관계가 지속되었지만 역사에서
보여주듯이 영원한 아군은 없는것이 불변의 진리인지라,
결국 신라의 배신으로 백제는 한강유역을 불시에 습격받아 빼앗기게 된다.
백제의 성왕은 준비를 갖춰 이듬해인 554년 관산성을 공격하나,
경기도 광주에 주둔하고 있던 김무력(김유신의 조부)의 역습을
받아 비장 고간 도도에게 사로잡혀 참수당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 전쟁으로 "백제는 좌평 네 사람과 장병 29,600명이 참살되었고 말 한필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고구려는 북쪽의 돌궐과 전중쟁이어서 남쪽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신라에서는 천운의 기회엿고 백제에게는 불행이었다.
한강 하류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추후 신라가 삼국 통일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강을 장악하게 됨으로서 백제는 고구려와 교류할수 있는 길목을
잃었고, 신라는 서해를 통해서 중국과도 직접 교류할수 있게 되었다.
오늘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야합과 배신으로 가득찬 "관산성 전투"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